
HYEONKYEONG YOU
유현경
햇살, 가득히
Sunny, Shining
Jul 02 - Jul 31, 2026
Opening Reception
Jul 02(Thu), 5-7 pm
유현경- 눈을 감으면 보이는 풍경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1. 유현경은 일상에서 우연히 접한 풍경과 사람에 대한 강렬한 인상, 아찔한 감정이 저미듯 밀고 들어온 후 빠져나가고 남은 상흔 같은 것을 건져 올린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에 와닿아 눌린 상처들이라 도상이나 상징, 재현의 차원이 아니라 가슴과 뇌리에 불현듯 압인 된, 이른바 인덱스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지표성이란 결코 실재의 것과 등가의 관계를 갖고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 남겨진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발자국 같은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보고 기억하는 것은 존재하면서도 사라지고 부재 하는 것이며 떠오르는 형상을 지니긴 하지만 온전한 몸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유현경은 그것을 그리고자 하는 것 같다. 분명 풍경이나 사람의 기미를 난폭하게 남기지만 결코 그것을 온전하게 표상하는 것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대상을 상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것을 구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경계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절박한 붓질과 색채는 이미지와 질료, 구상과 추상이 혼재된 영역을 거느린다. 매체와 작가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이 그림은 그림으로밖에는 불가피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겨냥한다.
2.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추상’이라고 말한다. 그이는 일상에서 벌어진, 일어난 일들을 사후에 그린다. 기억에 의지해서 밀고 나간다. 모든 그림은 사후적인 반성이다. 작가는 자신이 보면서 일어난 생각을 대상화해보고 이를 추린다. 여기에 불가피한 추상의 과정이 개입된다. 작가는 자신이 특정 시간, 공간에서 불현듯 접한 인상적인 이미지를 가슴에서, 의식에서 조심스레 꺼내 그 묵혀지고 걸러진 것들을 통해 자신이 본 것, 이해한 것 아니 이해했다고 여긴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힘겹게 복기한다. 여기에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정서, 이해 등이 충돌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각의 그림으로 압축하기까지 절제하는 일정한 시간을 요구한다. 이렇게 남겨질 것만 최종적으로 압축해내는 과정이 추상이 된다. 자신의 심연 안에서 오랜 시간 가라앉고 그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겪어낸 후에 최후의 얼굴로 밀고 올라온 것이 그림이 된 것이다. 오랜 반추의 시간과 어두운 심연 안에서 살아남은 이 그림은 작가 자신에게는 비로소 편안한 관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추상은 의지와 의식을 포괄하여 몸에 밴 시간을 함축한다.”(작가노트) 그리고 추상은 몸에 배지 않으면 지식과 기술이 있어도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도 덧붙인다. 아울러 작가는 바탕칠이 되어 있지 않은 캔버스 천에 곧바로 ‘획과 붓질’만으로 그려 나간다. 이미 바탕 면, 흰색은 그림의 내부로 포섭되고 있다. 선이 아니라 획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선과 획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림이나 서예에서 붓질은 궁극적으로 획의 성격을 지닌다. 단지 사물의 외곽을 규정하고 가두는 선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생명력과 표현성을 이미 지닌, 작가의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외화 되어 밀고 나가는 획의 추구가 이 그림에서 매우 중요하다. 결국 작가는 그 획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그림을 보여준다. 아니 온전한 자기만의 문장/ 획을 만들려는 온갖 시도와 실패의 결과를 드러낸다.
3. 풍경과 인물이 주를 이루는 근작은 특정 공간과 그곳에 있었던 사람으로 인해 불거진 여러 생각과 감정들로 보이는데 대체로 적조하고 황량한 느낌이다. 그려진 부분보다 캔버스 천의 바탕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표면과 부대끼며 마지못해 칠해진 색/선이 지나치게 빠르게 얹혔다 떠났다. 눈부시게 하얀 배경을 찢고 나오는 형상은 날카로운 선, 햇살 같은 찌름, 물감의 질료성과 급박하게 문지른 붓질 등이 작가의 행위성을 지문처럼 안긴다. 그림들은 거침없는, 다소 난폭할 정도의 붓질과 순간적인 마무리로 순간 봉인되어 버린 형국을 지니고 있다. 급작스레 수습된 필촉과 물감의 드라마틱한 연출은 그림을 그려 나갔던 과정을 생생하게 인지시키면서 화면 위에서의 작가의 몸짓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대체로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리는 과정을 통해 얼핏 몸을 이루어 간다. 속도감과 필력이 이 그림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항이다. 그것이 그림의 내용이 되기도 하고 화면 위에 사건을 발생시키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의 신체와 감각, 신경의 강도가 느껴지게 만드는 일종의 지표들이다. 결국 이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세계의 외형, 형상이지만 동시에 물감/붓질로 이룬 생생한 회화의 피부들이고 그것은 특정한 존재의 외피를 암시하면서 유사하지만 동시에 결코 재현이 아닌 것, 닮은꼴이 아닌 존재의 회화적 형상화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추상이라고 말한다. 그이의 그림은 무엇인가 보여 주다가 지운다. 온전히 보여줄 수 없다는 자괴감과 무엇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부대낀다.
4. 풍경이나 사람의 형상이, 풍경과 사람이 함께 그려졌다가 지워졌다. 상당히 축약된 흔적이 우발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완성이나 그리다 만듯한, 의도적인 무성의함으로 멈춘 화면은 불친절하고 심지어 작품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드러낸다. 회화라는 물리적 실체 속에서 구체화되고 펼쳐지는 이미지들, 미술을 시각적으로 표명하는 영역에 위치시키려는 태도에 은연중 저항한다. 이런 경향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주된 성격이다. 유현경은 기존의 정형화된 회화와는 조금은 다른 길을 낸다. 구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개념적인 것으로 환원되지도 않는 사이에서, 발상의 침전물이나 개념의 발명이 아닌, 형상이면서도 불가피하게 추상인, 구상이자 추상인 그림으로 나간다. 작가는 자기 신체와 감정, 기억에, 본능에 충실하려 한다. 전적으로 그것에 기반해서 출현하는 그 무엇을 그리고자 한다.
작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하는 대상, 나의 아빠, 나의 엄마, 그들과 보내 따뜻한 시간, 그리고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들,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작가노트)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들은 작가가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자 “독립적이고 개인으로 자기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를 지켜가는 사람”(작가노트)들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작가에게 인물을 주로 그리게 한다. 이 그림은 논리적인 서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낯설고 시적인 분위기를 ‘쨍’하게 던져 놓는다. 그저 모종의 흔적들이 무엇인가를 보게 만든다. 아니 상상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이 난해한 단서와도 같은 선, 색, 형상은 거칠게 잘려나간 부분, 뜯겨 나간 상황, 지워지고 뭉개진 기억과 단상을 가로지른다. 붓질과 붓질이 결코 봉합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진동한다. 파편적이고 우연한 연결로 구성된 그림이다. 시간과 공간을 뚫고 침입한 대상에 얻어맞은 관자의 두근거림이 멍들어 있는 것이다. 하여간 이 그림에서 투명한 것은 없다. 통상 관습적인 그림에 대한, 작품의 형식적인 구성을 제거하고 일반적인 기대를 지운다. 회화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역할을 찾는 그림이다. 그렇게 유현경의 그림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모습으로, 비정형의 것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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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제공, 히말라야 스케치여행중 Nanga Parbat에서 유현경작가
You Hyeonkyeong (b. 1985) has built a highly distinctive pictorial world through her relentless exploration of the human psyche, interpersonal relationships, and the essence of existence. Making her formal debut with the solo exhibition Sonata of Desire in 2009, she has since garnered extensive international experience, staging dozens of exhibitions across major global art hubs, including Seoul, New York, Paris, Amsterdam, and Düsseldorf. The artist has continuously broadened her artistic spectrum by participating in prestigious international residency programs worldwide, beginning with Schloss Plüschow in Germany (2011), followed by Rote Fabrik in Switzerland (2014) and the Doosan Residency New York (2016).
Driven by a solid academic foundation and diverse global exposure, Yoo’s practice is constantly evolving. On her raw canvases, unformed figures rendered with swift brushstrokes radiate a primal sense of individual presence and a unique, unvarnished aura. The "honest confrontation" and "paradox of erasure" initially manifested in her portraiture have progressively expanded into the surrounding space, evolving into landscapes. Her bold restraint—leaving large portions of the canvas empty—and her aesthetic of white space resonate deeply with the traditional Korean view of nature, which embraces the natural order of things with understated simplicity. This serene honesty and masterful expressiveness offer viewers a peculiar sense of liberation and a profound allure.
You Hyeonkyeong earned both her BFA and MFA in Painting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is currently based in Berlin, Germany. Her artistic excellence has been highly recognized through prestigious accolades, including the Ha Dong-chul Fellowship (2008) and the 8th Chong Kun Dang Art Award (2019). Her works are held in the permanent collections of major public, national, and private art institutions across South Korea.
"모든 그림은 자화상이다. 자신을 비추는 상(想)이라서 그렇다. 마음이 어려울 때는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일반에 꺼내어 놓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이해이다. 주어진 환경은 각기 다르지만 삶의 과정에서 비슷한 통증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일반임을 말하고 싶었다."
"경험이 늘면서 이미 겪은 것들은 가벼워졌다. 지혜가 생겼다 할 수도 괴물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 둘은 동격이라 더 큰 싸움을 찾는 것 같았다."
"예술가로 고통이라는 단어를 계속 가져가고 싶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고통을 그려낼 수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여러 문제, 삶과 죽음을 닮은 사랑과 이별, 생노병사의 무게, 그 속에서 느끼는 우울, 그 어려움들의 기억에 여러 번 다녀와야 하지 않나 싶었다."
"어릴 때는 체감하는 시간이 길었고, 어느 때는 시간이 더디게 갔으며, 사람들은 시간이 참 빠르다 말하고, 노년으로 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하는 것을 듣는다. 그림은 시간의 압축이라는 점에서 추상이고, 그림을 통해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였다. 시간만큼 정해진대로 흐른다는 점에서 절대적이면서도 모두가 시기별로 다르게 느낀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개념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붓질에는 연유가 있어 획 하나에는 그를 그어야 하는 혹은 그을 수 있는 시간과 정제로의 과정이 필요했음을, 그를 위해 가는 길을 조정했으며 시간을 쌓고 기다렸음을 알게 된다. 결과로의 그림이 어떤 모습이던 빈 화면과 대면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시간을 압축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추상이었음을 설명한다."
"예술가에게 과거는 가장 큰 소재이자 자산인데 작업을 하다가 마음이 어려울 때는 미술관을 찾는다. 나도 그렇지만 모든 예술가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어서 미술관에 다녀오면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자기 모양으로의 길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환경, 그 역사속에서 어떤 사유를 했는지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글 = 유현경(추상화한 그림을 통한 나의 삶의 정리와 관계를 위한 만남 연구 중,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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